여행도 정말 지긋지긋하게 다녀서 좀 쉬고 싶었고 마침 코로나라 여행 자체가 제한이 되기도 하고 해서 겸사겸사 이방저방을 정리 중이다. 일단 부피가 가장 큰 책들을 정리하던 중, 책장 한 구석에서 낯선 유리병이 나왔다. 안은 아직 정체모를 액체로 삼분의 일정도가 차있었다. 혹시나 하는 마음에 (투명인간으로 변한다던가, 입에서 돈이 나오는 사람이 된다던가, 1,000년을 살 수 있다던가) 일단 마셔볼까하다가 마침 집에 들어오신 부모님께 이 병의 정체에 대해서 물었다. 그랬더니 아버지께서, "이야, 그게 거기 있었네?" 그러자, 어머니는, "그러게요. 호호. 그거 당신 군대에서 의무병때부터 쓰던거 아닌가요? 호호. 아직 남아있었네. 최근까지도 그 약병에 있던 빨간약 계속 리필해가며 써왔는데" 나는 놀랐다. "아니, 무슨 빨간약을 40년이나 쓰셔요. 필요할때 사서 쓰면 되지. 일단 저 방이랑 창고 정리 중이니 버리고 필요할 때 새로 사 쓰세요.허, 참." 그 말에 아버지는 언성이 높아지며, "아니, 아들아.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? 아직 반통이나 남았고 우리가 써온 빨간약 중에는 아직까지도 이 약만큼 잘드는 약을 못봤는데 버리다니. 이리주렴." 아버지는 내 손에서 약병을 받아 아버지의 의료품이 있는 박스로 옮겨놓으셨다. 그리고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 약이 40년 되었느니, 50년 되었느니 옥신각신 하시면서 저녁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. 잠시 창고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내 것 하나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깨달았다. 모든 결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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